제9편 행군(行軍) : 사소한 행동에도 원칙을 지켜 큰 흐름을 해치지 않고, 크고 작은 '늧'을 포착하여 기세를 잡아 흐름을 주도하라.
사실 전쟁의 여러 과정 중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이 '행군'이 아닐까?
본능이 이끌어주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작은 물고기 떼처럼 병사들이 움직여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규모 인원을 한 몸과 같이 움직여야 하고, 평탄한 도로와 쾌적한 기후 조건에서 이동하면 좋겠지만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을 뚫고 나가야 하며, 진형을 갖출 때까지 젠틀하게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행군 중인 군대는 공격하기에는 가장 좋은 대상이다.
제9편 행군(行軍)은 행군에 관한 설명이다. 그런데 행군을 단순히 전쟁의 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인생길'에 빗대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즉, 행군에 관한 내용을 연역하여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길 위에서 시시각각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들을 잘 관찰하고 파악하여, 사소한 '늧'을 포착해 큰 위험을 피하고, 때론 이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적이 먼 거리에 있으면서 아군에게 도전하는 것은 아군을 유인하여 끌어내기 위함이다.
* 적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지 않고 평지에 진을 쳤다면, 아군과의 결전에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나무가 무성한 숲에서 바람이 없는데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많은 적이 은밀히 습격해 온다는 징후이다.
* 적에게서 파견된 사신이 겸손한 말투로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면, 이는 아군을 공격하려는 징후이다.
*적이 몹시 화가 나서 기세 등등하게 쳐들어와서도 오래도록 접전을 하지 않거나 물러서지도 않을 때는 그들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지 신중히 관찰해야 한다.
물론, 주변의 모든 현상과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중함을 벗어난 어떤 병적인 습관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속에는 숨은 의도들과 징조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과 같이 특히 중요한 목표를 다투는 일일 수록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쉽게 보아 넘기지 말고 신중히 관찰하고 그 속에 숨은 의미들을 포착해낼 수 있도록, 경계하고, 연구하고, 정보를 수집하여야 함을 이 '행군'에 관한 설명을 통해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외부조건에 대한 신중함이 아닌 내부 조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 계획성과 판단력도 없이 숫자만 믿고 적을 가볍게 보는 자는 적의 포로가 되고 만다.
* 병사들이 장수와 미처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사들의 작은 잘못을 처벌하면, 병사들은 그 장수에게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적과 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장수와 이미 친숙해진 뒤에 병사들의 잘못을 처벌하지 않으면, 역시 이들을 이끌고 적과 싸울 수 없다.
* 도리에 맞게 명령을 내리고 위엄으로 다스려야 위아래의 일체감과 엄정한 군기가 확립된다. 이것이 바로 반드시 이기는 군대이다.
그냥 생각 없이 읽는다면 역시 와닿는 것이 없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하며 읽는다면 이것은 비단 군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친구와 선배들 간에서도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지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만하고 상대방을 가볍게 보아 넘기지 마라.'
'친숙함이 없는 상대에게 섣불리 훈계하는 것은 참견이고 간섭일 뿐이며, 듣는 이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이런《탈무드》에나 나올 법한 지혜가 손자병법에서는 병법의 요소로서 자주 나온다. 비유법과 은유법을 잘 응용할 수 있다면, 이 병법서 속에서 많은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손자병법이 단순히 병법서를 넘어서서 '철학'의 범주에 속할 수 있게 된 이유가 아닐까.
손자병법을 가까이해야 할 이유가 또 한 가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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